평소 불사신에 갖고 있던 의문은(판타지적 맥락) 어떻게 신체가 새로 재생되며 그 과정에서 이물질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정도였는데, 아인 보고 나서 내가 틀에 박힌 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내가 윤활한 사고를 하지 못했던 이유는 모든 것을 척추기반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다. 척추에서 머리가 나고 그 머리에서 몸이 나는 극히 평범한 생명체를 기반으로 생각하니까 맥락의 오류가 생겼던 건데, 아인에서는 뇌를 기반에 두고 재생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검은 물질을 기반으로 새로 물질이 만들어지니 그런 오류가 없었다.
문제는 내 인물들이 아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니며, 또한 나는 그렇게 형편 좋게 해결되는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최대한의 고통을 겪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불사신의 몸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들어갈 경우 그 생명체를 처분하는 방법은 매우 뛰어난 면역체계~ 백혈구다. 이물질(벌레, 기생충 기타 생명체)를 죽이고 그 시체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면역체계가 있으면 만사 Ok인 것이다.
문제점은 생명체가 아닌 이물질이 들어가면 그걸 어떻게 해결하냐는 건데, (나무토막, 칼, 탄환) 이걸 생분해할 수 있도록 하려면 불사신의 체액을 산성으로 만들거나 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신비로운 물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너무 에일리언 같아서 싫다. 그냥 그 주변 살의 살만 아무는 것도 싫으니 영영 그 부위는 곪아가며 면역체계가 그 이물질을 빼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는 걸로 하자. 이런 고통을 겪을 필요도 없다. 불사신이니 이물질이 들어간 부위를 칼로 가르고 빼내면 되는데, 우유부단한 성질의 불사신은 아주 오랜 기간 끙끙 앓거나 엉엉 울며 내부의 것을 빼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이 재미있다.
문제점 2는 신체를 재생할 때 그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손과 손목을 분리하고 그 앞에 무거운 자석을 놓는다. 그렇다면 신체는 그 이물질을 피해서 재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이물질을 없애 버릴지... 아인에서는 후자를 택했고 따라서 여러 재미난 전투 방식이 만들어졌다. 근데 나는 아인 작가가 아니니까, 이물질을 피해서 재생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니까 몸에 무거운 자석이 박힌 채로 재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 쪽 팔에 자석 박혀서 그 부위는 매번 곪아간다는 상상을 하니 개끔찍하다~ 옳지 못한 방식으로 재생된 부위는 새로이 재생할 수 있게끔 절단해야한다.
어지간한 경우에서 제 수족이나 어느 부위가 잘렸을 때 그 부위를 잃어버리진 않을 테니까, 잘린 것을 갖다가 오래 붙여 두면 절단면이 자연히 아물 것이라 생각하는데 만일 해당 부위를 잃어버렸을 경우에는 몇 시간 걸려 그 부위를 재생하는 쪽이 좋을 것 같다. 잘린 부분의 가장 바깥쪽부터 서서히 새 살이 돋아나고 뼈가 돋아나는 것이다. 존~나 아프겠다... 맨 처음 신체를 재생하게 되었을 때 상처 부위에 붕대를 둘러 두거나 감싸둔 경우 그 붕대 위에 그대로 살이 돋아나면 좋겠다.
머리가 잘리면 불사신이 사망하는 경우가 꽤 많은데 나는 머리 잘라도 못 뒤져서 끔찍한 삶을 꾸역꾸역 이어가는 게 좋으므로 머리부터 몸이 재생되는 걸로 하자. 몸에서 재생되는 것이 아닌 뇌 있는 쪽부터 몸이 재생되는 것이다. 완전한 가사 상태에 들어갔다가 몸이 다 재생되고 나서야 깨어나면 좋겠네... 그렇다면 머리부터 몸 전체를 완전히 깍둑썰기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믹서기에 넣고 갈면...? 재생할 건 아는데 그 기준점을 설정하는 게 어렵네...
따지자면 유물론 지지해서 영혼이 있다는 소리는 별로 안 하고 싶은데 인간을 구성하는 퍼즐이 빠져서~ 인간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을 뭉쳐 만든 하등한 존재라 불사신이 된 거니까 뇌까지 갈린 경우 가장 가까운 곳의, 질량이 큰 부분의 신체 조각들이 하나하나 결합해가면서 작은 부위부터 만들어 내고 이후 신체도 다 재생되는 걸로 하자. 신체 깍둑썰기 돼서 쓰레기통에 버려졌는데 13시간 즈음 지나서 물컹물컹하고 축축한 상태로 다시 태어나면기분 참 더럽겠다.
불사신은 면역도 죽여줘서 에이즈나 임질 간염같은 질병 걸릴 일도 없고 그 흔한 감기도 안 겪겠네... 근데 음... 신체 재생을 위해 무한으로 증식하는 세포... 암세포를 연상시키네...
불사신의 요점은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삶이 영원히 지속되어 끔찍하고 천박해진다는 건데 어째 내가 소재를 잡으니 무한료나고어지옥이 된 것 같네... 단적인 예시를 들었지만 저렇게 끔찍한 사고를 겪을 일 없이 몇 백년 동안을 살아갔을 불사신들이 훨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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