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DOMELTDOWN 있는 지식이라고는 모두 훔친 것


 
    사람이 한평생 마실 수 있는 알코올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이의할 사람 많은 말이지만, 운 좋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부 그렇다. 자신이 마실 수 있는 총량을 뛰어 넘는 순간부터 술은 제 목숨을 담보로 잡는다. 일컫는 것이 의미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질병들, 그중 우리 아빠는 OO였다. 
 
   알코올 중독은 삶을 한 순간에 지옥으로 고꾸라지게 하지 않는다. 미지근한 불행에 발목부터 천천히 잠겨가는 것에 가깝다. 그런 느긋한 속도로 망가져가는 삶이 사람을 일희일비하게 했다. 극심한 불행은 아니니까, 얕은 희망을 품고 그 얕은 희망이 깨어졌을 때 죽을 만큼 슬퍼한다. 나 같은 경우 감정 회로가 망가졌는데(재건 중에 있다) 매일 싸우고 울었다. 참이슬 빨간 뚜껑 2L. 술 한 병이 사람의 감정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짐작한 적이 없다. 처음에는 약한 OOO. 알고 난 뒤로도 술만 끊는다면 나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큰 오산이었다. 우선 알코올 중독은 질병이다.*하단 이미지 참고-

자료화면 격기 3반)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아빠는 스스로 알코올 중독이라는 자각이 없다. 술을 마시는 것도 도파민을 위함이 아니라, 그저 취하기 위함이다.

가족간의(개인) 제어나 죄책감을 이용한 회유 등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흘린 눈물이 말 그대로 1L가 넘는다. 칼을 들고 보는 앞에서 내 팔에 칼을 내리 꽂아 볼까 싶었다. 충격 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기대했다. 이번 기회에는 되지 않을까, 언제 내게 칼을 찔러야 할까, 어느 순간이 가장 효과가 좋을까 계속 고민했다. 정말 적절한 타이밍이 당도했을 때는 너무 하기 싫어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안 했다. 하여간 자식으로서는 내 감정 소모가 아빠에게 아무런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한 명의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납득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보는 것처럼 자신의 의지를 통해 금단을 이겨내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다. 현실 속 중독은 그런 질병인 것이다. 
 
    이런 현상을 공동 의존이라고 하는데, 이미 알고 있는 용어였고 내가 그런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알았다. 아빠를 집에 혼자 두고 나오니 걱정돼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고,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혀 조기 퇴근에 이른 적이 있다. (경위는 기억나지 않음.) 스스로의 정서에 문제가 있음을 아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고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현실이 고달프고 고달프지 않고에 따라 등원하던 정신과에서 "제가 지금 공동의존적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라 했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감정을 제어하고, 덜어내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느끼게 되지 않는 한 어렵다.
 
Q.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가요? 
A. 무시 무관심 방치가 정답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개 개인의 경험담일 뿐이다. 
    나의 경우 지속된 노력과 감정소모에도 상황이 변하지 않자, 아예 아빠를 보지 않았다. 같은 집에 살면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고 같이 식사하는 일이 없었으며, 늘 집 밖을 나돌아다녔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또 놀았다. 의도적인 무시는 상대도 만남을 꺼리게 하는, 눈치를 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다가 동정심이 들면 한 번씩 같이 식사를 하는 정도였고, 가장 큰 문제인 술조차 포기하고 무심하게 여기니 더는 눈물로 호소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는 1년 정도 들었다. 그 전후 기간 동안 겪었던 정신 질병은 불안 장애, 분노 장애, 우울, 집중력 결핍, 난독 등이 있으며 다른 카테고리로는 매우 높은 충동성과 공격성이 있다.
 
~생략~
   이 글을 쓰려고 한 계기는 사실 아까 낮에 '이제는 정말 괜찮겠다, 나는 완벽히 극복했고 아빠를 사랑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힘든 시간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저 멀리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던 사람이 있다는 위로의 글을 남기고 싶었다. 근데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분노 장애를 겪고 있으며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빠의 입원은 미뤄졌고 이런 저런 곤란한 여러 상황에 처해 한동안 골치아프게 생겼다. 다만, 일희일비 하지 않게 되었으며 대개 차분하고 담담한 태도로 아빠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번외
    나랑 아빠는 드물 만큼 사이가 좋은 편이었고, 단짝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면 더 힘든 이유가 이것이다. 술을 마시고 이렇게 망가져가는 것을 보면 과거 내가 알고 있던, 내 기억 전반을 차지하는 그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오직 나 하나밖에 없다며 나를 위해서는 뭐든 하겠다고, 사소하게는 학교를 땡땡이 치고 같이 놀이공원에 가주던 내 아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보면서 운 적 없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나를 울렸다. 아빠와 딸의 이야기가 나오면 정말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는데, 지금 와서 되돌아 보니 서러워서 울었던 것 같다. 상황으로 인해 감정이 부식되어가는데 오죽했겠나 싶다. (인터스텔라 보며 정말 많이 울었는데 이 대목 쓰면서 눈물 두 방울이 떨어졌다. 슬프지 않은데 이렇게 종종 눈물이 나온다.)
    하여튼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요모양 요꼴이 되었어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 하나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현저히 기능이 떨어지게 된 두뇌와 다혈질적으로 변한 성격, 확대해석과 한심함 등으로 인한 혐오로 인해 내 마음이 반감될 뿐... 내 감정을 다 고친 줄 알고 자신만만하게 적고자 했는데 아니었다는 것을 오늘 또 절절히 느꼈고, 나중에 또 말짱해지면 정말 제대로 적어봐야겠다...
    오늘 화난 이유 : 사라졌던 지갑을 아빠 방에서 발견함. 인데... 아빠가 내용물과 카드 말고 지갑째로 가져가버렸던 것을 오늘 찾았는데, 훔친 적 없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태도가 너무 꼴보기 싫어 소리 지르고 싸웠다. 제정신도 아닌데 상냥히 넘어가지 못하는 내 성격에도 문제가 다분해 보이기는 하는데... 고작 이 나이 먹고 이만큼 의젓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삼촌이고 엄마(이혼)고 아빠 때문에 정신병 걸려서 아직도 소리지르고 싸우고 불안증 시달리는데 나는 해당 부분은 극복했으니 ^.^v 하하... 난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고 싶다. 근데 다들 나를 너무 걱정하네... 고마운 마음은 뒷전이고 우선 너무 불편한데...